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
조성희의 변모
1988년 10월13~22, 한국화랑
조성희의 변모 - 그의 근작전에 즈음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 오래간만에 조성희의 근작전을 서울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의 조성희와 건너간 후의 조성희가 어떻게 달라졌느냐에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적인 예술가란 자기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늘 외향적으로 변모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모라는 것과 변화라는 것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다. 예술가에 있어서 변모는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지만 변화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변화라는 것은 송두리째 자기의 본질을 버리고 또 다른 것을 갖추는 것이기에 그들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계작업이 없다. 그러나 변모는 같은 본체를 가지면서 때에 따라서 보여지는 의상이 다를 뿐이다. 조성희는 화가의 본질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간직하고 그의 의상을 갈아 입힐 뿐인 것이다. 그러기에 얼른 보기에는 다른 것 같지만 실상은 자기를 이질적으로 지속시키는데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의 발전과 지난 과정은 일종의 필연적인 탈피 현상으로서 좋은 예술가는 반드시 좋은 변모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화가 조성희는 초현실계통의 내재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는 화가였다. 그는 평면 위에다 무의식이나 꿈과 같은 정신내부의 세계를 그는 자기의 작품세계에서 마음껏 실현하였던 것이다. 강인한 재능과 체질을 갖고 있는 조성희는 남이 생각지도 못한 환상세계에서 형상을 창조하고 그렇게 창조한 형상으로써 현실세계에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 그 무렵 그는 3차원적인 입체에도 흥미를 갖고 종이작업을 통해 독특한 기념비적인 세계를 추구하였다. 이번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그의 근작전에는 그러한 작품 이후 조성희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방향으로 그의 조형적인 추궁은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평면작업이고, 또 하나는 입체작업이다. 이 평면작업은 명쾌한 표정과 독특한 기법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대위법으로 처리하였다. 가령 큰 면을 까맣게 처리하고 그 주변을 분할된 세부적인 방법으로 대치시켰다든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를 궤변이나 다변으로 처리한 것이 아니고 커다란 목소리로 단순 명쾌하게 처리한 점이 그것이다. 다음 3차원적인 입체는 구성에 있어서 그가 시도한 기념비적인 공간처리를 가지나 그 표면처리가 평면작품에서 볼 수 있는 세분되고 단순 명쾌한 것으로 메꾸워졌다.
원래 예술가는 강인한 체질의 소유자 여야 한다. 왜냐하면 창조라는 어려운 일을 하기에는 그만큼 강인한 체질에 의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모처럼 돌아온 화가 조성희의 작품을 보고 과연 그가 미국에서 허송생활을 하지 않고 나름대로 화가로서의 가치를 발휘했다는 것을 보고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나뿐이 아니리라.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 미술평론가)